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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를 진짜 민주투사로 안 보는 이유

곰발바닥개발바닥 2011. 12. 30. 18:49
김근태를 진짜 민주투사로 안 보는 이유
 
조영환 편집인

▲ 북한의 핵실험 직후인 2006년 10월 20일 열린우리당 김근태당의장이 개성공단을 방문, 오찬장에서 식사 도중 북측 접대원의 요구에 사양을 했으나 마지못해 함께 단상에 올라 춤에 응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근태 민주당 상님고문이 30일 새벽 사망했다고 한다. 명복을 빈다. 29일 밤 트위터에서는 김근태 사망 소식이 알려져서 트위트리안들이 "잘 죽었다"거나 "애석하다"는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다. 민주화를 위해서 고문을 당했다는 김근태의 주장이 진위논란에 있는 가운데, 그래도 민주화가 시대정신으로 횡포를 부리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김근태의 죽음을 인간적으로 연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민주화가 고문과 학살을 극복한 정의로운 투쟁이라는 인상을 준 장본인인 김근태의 사멸로 인해서, 이제 민주화로 포장된 적화공작과 이적선동이 중단되길 바랄 뿐이다. 그것이 민주투사의 표상이었던 김근태가 민주팔이들의 난동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오늘날 대한민국에 저승에서 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아무튼 김근태를 내가 민주투사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겠다. 29일 김근태의 사망설을 놓고 타위터에서는 좌우익 사이에 논란이 벌어졌다. 나는 트위터에 "내가 김근태를 민주투사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2008년 광우난동사태 당시에 100일 폭동을 반란이라고 아우성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2008년 광우난동사태를 반란이라고 외치는 사람만이 민주투사로 인정한다. 오직 경찰, 군인을 민주투사로 본다"라는 글을 올렸다. 또 "김근태가 고문당한 것은 불쌍하고 불행한 일. 그러나 지금 되돌아보면, 좌익의 민주화 투쟁은 적화공작의 일환으로 판단된다. 2008년 이후로 나는 이근안을 민주수호자로 보게 되었다. 김근태는 광우병 폭동은 반란이라는 말을 남겼어야 민주투사가 되었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더하여 나는 "김근태는 자유대한민국에서는 독재를 가정해서 목숨 걸고 싸웠다. 그런데 그는 북한의 세습독재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았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에 개성공단에 가서 춤을 췄다. 그는 민주투사가 아니라 좌익혁명투사였다고 나는 본다"라며 "지금 보니 이근안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애국자였다. 종북좌좀들을 그렇게 조지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김대중-노무현-김정일 추종 패당에 의해서 월남화 되었을 것이다"라는 글도 올렸다. 이 나라를 빨갱이들로부터 막기 위해서 온 몸을 던져서 노력한 이근안이라고 이제 평가합니다. 한때 이근안이 나쁜 줄 알았는데, 빨갱이가 천만배 더 악질이더군요. 그런 빨갱이를 척결하려 한 이근안!"이라고 평가했다. 민주투사들이 일으킨 광우난동사태를 체험한 나는 '민주화'라는 말에 치가 떨린다.
 
김근태에 대한 나의 이런 평가는 좀 지나친 혹평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민주화를 빙자한 좌익세력이 온갖 억지와 깽판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위협하고 온갖 억지와 궤변으로 북한의 세습독재체제를 비호하는 현상황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나의 판단이다. 김근태를 영웅으로 섬기는 민주팔이들은 오늘날 어린 한국의 민주주의에 가장 해로운 군중선동의 주체세력이 되어서 밤에 빨치산처럼 촛불폭란을 상습화 및 정착시키고 있다. 김근태가 북한의 세습독재에 최소한의 공개적 비판을 해도 나는 그가 박정희와 전두환과 싸운 민주화 투쟁의 진정성을 인정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향해서는 성난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고, 김일성 세습독재집단에는 기죽은 개처럼 굴종한 김근태는 진정한 민주투사가 아니다.
 
김근태에 대한 나의 이런 견해는 우익진영에서 일반성(generality)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조갑제닷컴의 한 네티즌(coreano/참깨방송)은 "김근태 씨, 이대로 가면 종북 밖에 더 됩니까?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받다 피딱지마저 빼앗겼다던 민주운동가(?)시여. 당신네들의 민주화는 왜 북한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김정일에 복무하는 걸로 끝나는 건가요? 박정희가 전두환이 그토록 미웠다면 김일성 김정일 부자 세습독재는 당연히 타도대상이거늘 어찌 그리도 비판 한 마디 않으셨습니까?"라며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민주화운동을 지지하고 동참했던 국민들에게 해명이든 사과든 하고 떠나야 하지 않을까요? 이대로 가면 결국엔 평양에 있다는 형제에까지 연좌된 종북세력의 일원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라고 29일 주장했다.

심지어 김근태가 이근안으로부터 고문당했다고 주장한 사실에 회의를 품는 우익네티즌의 글도 김근태 사망일에 올라온다. 남부임 대세모 대표는 조갑제닷컴에 "김근태가 죽자 오늘 아침 연합뉴스는 그의 죽음의 원인을 군사정부의 고문 후유증이라고 보도했다. 그를 고문한 경찰이 악명 높은 이근안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며 "애시당초 이근안이 저들 김근태와 같은 인물에게 주목당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들에게 이근안은 제거의 대상이었다"고 주장했다. 남부임 대표는 "김근태는 고문당하고 나온 이후로 내리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리고 죽기 전에도 대선까지 꿈꿨다"며 "연합뉴스는 김근태가 고문후유증으로 죽었다는 말을 하는가? 무엇을 근거로! 소수 약자 이근안이 처음 봤다는 고백을 ‘좌익’처럼 무시하는가!?"라며 이근안의 김근태 고문설을 퍼트리는 연합뉴스에 거부감을 표했다.

김근태는 사망했다. 이명박 집권 기간에 노무현, 김대중, 김정일, 김근태 등 좌익세력의 두목급들이 사망했다. 이 기회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욕을 먹고 자칭 '민주투사'들을 제압하면서 지켜낸 자유민주주의의 기운이 한반도 전체에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김대중-노무현-김근태가 주장한 민주주의는 냉전시대에 남한의 자유민주체제를 유지하려던 진짜 자유민주투사들에 대항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김정일의 세습독재에 침묵하거나 비호해온 김대중-노무현-김근태의 민주주의는 한민족을 자유로 이끌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2008년 광우난동사태를 일으킨 남한의 종북좌익세력이 떠든 '민주화'는 촛불폭동으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적화공작의 일환으로 판단된다. 촛불폭란을 강요한 김근태가 적화공작원으로 보일 정도로 민주투사에 대한 나의 신뢰는 없다.
 
북한동포들의 억압과 살상을 외면한 김근태를 누가 민주투사라고 할 것인가? "김근태를 민주투사로 보지 않은 이유는 북한이 첫번째 핵실험을 했을 당시에 개성공단을 방문해서 북한의 기쁨조와 춤을 췄기 때문이다. 새빨간 종북좌좀이지, 민주투사가 아니다"라는 나의 주장을 누가 어떤 근거로 반박하겠는가? 김근태가 진정으로 민주투사로 역사에 기록되려면, 그는 북한동포들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위해 유언이라고 남겼어야 한다. 공개적으로 "북한 김일성 3대 세습독재를 타도하자"고 선언하지 않는 한, 김근태는 김정일의 부역자에 불과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전세계가 공유하는 이 시대의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북한의 민주화를 제외한 민주투사는 진정성이 없다. [조영환 편집인: http://allinkorea.net/]

김근태 씨, 이대로 가면 종북 밖에 더 됩니까? (coreano 조갑제닷컴 회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받다
피딱지마저 빼앗겼다던
민주운동가(?)시여

당신네들의 민주화는
왜 북한 민주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김정일에 복무하는 걸로 끝나는 건가요?

박정희가 전두환이 그토록 미웠다면
김일성 김정일 부자 세습독재는 당연히 타도대상이거늘
어찌 그리도 비판 한 마디 않으셨습니까?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민주화운동을 지지하고 동참했던 국민들에게
해명이든 사과든 하고 떠나야 하지 않을까요?

이대로 가면
결국엔 평양에 있다는 형제에까지 연좌된
종북세력의 일원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

감옥에서 풀려나
여의도 성모병원 병실에서
환자복 차림으로 기자들을 만났던 당신이기에

부인에게 건 위로전화가
억압에 눌린 진실 갈구자들의 통곡으로 바뀌곤 하던 순진무구한 국민들에게
무슨 말로든 해명이 있어야 진솔한 삶이 아닐까요?

마지막 숨이 멈추기 전에
부인의 입을 빌려서라도
부디 한마디 하셔야 합니다.

엊그제 김정일 장례식도 끝났는데
뭘 두려워하시겠습니까?
입을 여십시요.

 
연합뉴스의 김근태 사인(死因)은 부당한 매도? (남부임 대세모 대표)
 
김근태가 죽자 오늘 아침 연합뉴스는 그의 죽음의 원인을 군사정부의 고문 후유증이라고 보도했다. 그를 고문한 경찰이 악명 높은 이근안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김근태 형제는 북한에서 고위층 간부를 지내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분단되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이땅에서 민청학련을 이끌며 정부를 비난하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만약 대한민국이 자신 개인의 집안이라면 어느 가족이 두고 보겠는가?

김근태가 막강한 실세로 돌아와 감옥의 이근안을 만났다. 인간은 고문한 사람의 얼굴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이근안은 그때 김근태를 처음 봤다. 당연히 김근태도 처음봤기 때문에 낯선 것은 당연하다. 그는 어설프게 이근안을 보고 용서한다는 말을 둘러댔고 벌써 체념한 이근안도 두루뭉수리 넘겼다. 그 자리에서 이근안이 “내가 언제 너를 고문했느냐?!”고 따져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당시 한국사회의 인권은 이근안에게는 전혀 해당없었다. 몽땅 뒤집어 쓴 이근안의 아내는 폐품 줍기(넝마)로 연명했고 그의 아들은 진학도 못했다.

애시당초 이근안이 저들 김근태와 같은 인물에게 주목당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들에게 이근안은 제거의 대상이었다. 왜냐면 고문의 신체적 고통 없이도 간첩의 자백을 받아내는 이근안의 기술을 매장하기 위한 거였다. 이근안을 매장하지 않고서는 어떤 목적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근안 앞에만 가면 다치지도 않고 술술 불어대니 그들의 수법인 감옥수에게 “자살하라..”는 계략이 먹히겠는가.. 고문치사상해라는 그들의 선전감이 되겠는가?

김근태는 고문당하고 나온 이후로 내리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리고 죽기 전에도 대선까지 꿈꿨다. 무슨 목적으로! 연합뉴스는 김근태가 고문후유증으로 죽었다는 말을 하는가? 무엇을 근거로! 소수 약자 이근안이 처음 봤다는 고백을 ‘좌익’처럼 무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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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2/30 [11:43]  최종편집: ⓒ 올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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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니가그래서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