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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 불행과 고통의 경연장 되는가

곰발바닥개발바닥 2011. 5. 23. 16:14
´나가수´ 불행과 고통의 경연장 되는가
<김헌식 칼럼>´임재범 현상´ 대중가수는 고통받는 대중의 수동적 대리자?
김헌식 문화평론가 (2011.05.23 08:5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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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프로그램의 한국적 성공 요인으로 스토리텔링을 꼽지 않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여기에는 더욱 약자의 설움과 고통이 충분히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 예컨대, 불우한 어린 시절과 성장환경, 그리고 그것을 딛고 일어나려는 삶의 의지들이 그의 노래하기에 담겨 있는 것을 선호하는 미디어심리 그리고 시청자 심리가 형성되었다.

물론 이러한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져도 노래실력이 없으면 탈락이었다. 가창력에 이런 개인의 스토리, 그리고 무대의 열정과 테크닉이 모아질 때 충분히 호응을 받았다. 사실 이런 점은 아마추어 가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대체적인 특징이다.

전문 가수들의 오디션 서바이벌인 <나는 가수다>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를 수 있었다. 그들의 개인 스토리들은 적어도 이미 많이 알려졌다. 더구나 요즘의 인기가수들의 경우에는 이미 인기의 정점을 찍었어도 그들의 이야기에 새로울 것이 없었다. 따라서 스토리텔링자체가 매력적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보기 좋게 깨뜨려 버린 것이 바로 임재범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매주 임재범에 열광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울고 있다. 대중 가수에게 기립박수가 열화와 같이 쏟아지는 현상은 전후후무한 일이다. 그간 대중가수는 단지 소비되는 존재이다. 하지만 기립박수는 예술이라고 내세우는 장르의 공연장, 상연장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제 대중가요는 예술의 경지에 오른 것인가.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임재범에게 쏟아지는 찬사, 혹은 기립박수는 단지 그의 노래 실력에만 기인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의 삶에 대한 눈물과 박수이다. 그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김태원의 인기도 그의 현재진행형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의 암수술은 그 정점이었다.

임재범 현상은 누구도 재현할 수 없으며 임재범 한 명만이 오로지 실현할 수 있다. 대중심리에서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은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차별성이다. 음반이나 음원의 경우에는 그 노래 양식은 고정적이다. 하지만 공연은 그 매번마다 다르다. 소장의 가치는 독보성이다. 그 독보성에는 노래 실력도 작용하지만,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의 고유한 가치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대리적 충족심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가수는 단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대중을 대리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이나 인생을 노래하는 것이 바로 그 노래를 듣거나 지켜보는 사람을 대리하는 것이다. 만약 대중을 대리하지 못하는 가수는 대중성을 확보할 수 없다. 클래식 가수는 그러한 대중적 삶을 대표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신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다. 이는 제도화된 문화권력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점점 뭇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며 지식이나 교양, 전문성과는 관련이 없다.

대중가수에게 표준화된 제도 권력은 없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대중의 심리에 부응하여 대리충족시켜야 존재적 가치는 물론 생존을 할 수가 있다. 이는 <나는 가수다>에서 정말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이돌 그룹 위주의 가요풍토에 일격을 가한 것이 임재범 자체보다는 바로 누구도 따라할 수도 없는 삶의 자격을 갖춘 사람의 노래가 진정한 대중적 울림과 선호를 받는다는 점의 명확한 재확인이다. 삶의 경험과 통찰이 없는 만들어진 가수의 한계는 명징해졌다.

무엇보다 임재범의 라이프 스토리와 그의 노래하기는 우리 대중들 스스로의 삶의 이야기이며 그것의 노래하기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도 있다. 임재범이 계속 1등하는 현상은 그가 지닌 불우한 과거의 성장과정, 그리고 현재의 고통과 질병 등이 발휘하는 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임재범과 같은 불행과 고통이 없으면 탈락될 듯싶다. <서편제>의 주인공처럼 명창을 위해 한(恨)을 쌓아야 하는가. 자칫 불행과 고통의 경연장이 되지는 말아야 한다.

고통과 불행이 수단화되는 일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자칫 그것이 상품화되는 현상도 무감각해진다. 나아가 분노와 자학, 연민 그리고 회한이라는 수동적, 도피적 심리 상태에서 좌절적 무기력의 심리에 퇴행하는 현상일 수도 있다. 더구나 이미 임재범에 관한 강력한 감정의 맛을 대중적 감수성이 어느 노래에 몰입을 할 수 있고, 응원을 객관적으로 추구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글/김헌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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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니가그래서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