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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외국 오랑캐를 배척하자는 양이 운동이 거세지고, 개국으로 돌아선 막부를 옹호하는 쪽과 천황을 정권의 중심에 놓고 막부를 타도하자는 존왕양이파로 갈려 일본 전역은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었다.
당시 일본은 비록 막부의 통치 하에 놓여 있기는 했지만 60여개에 달하는 번(藩)이 마치 하나의 독립된 국가처럼 독자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하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검술에 정진하여 젊은 나이에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도 무사시에 필적할만한 최고 검객의 경지에 도달한 료마는 페리의 강압적인 개국 요구에 자극을 받아 도사 번의 하급무사들이 주축이 된 도사 근왕당에 참여하고 그 후 막부를 지지하는 도사 번의 정책에 반대하여 번에서 탈퇴한다. 이처럼 번을 탈퇴한 무사를 낭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료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는 동안 개국을 통한 근대화야말로 서구 열강으로부터 일본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인식하고 점차 일본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서게 된다. 료마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막부의 군함 사령관인 가쓰 가이슈의 제자가 되어 항해술을 배우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사설 함대를 창설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게 된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천한 하급무사 출신의 이 낭인은 정확한 정세 판단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마침내 사설함대의 꿈을 이루어 낸다. 그리고 무력으로 막부를 무너뜨리려는 죠슈 번과 사쓰마 번, 그리고 동시에 막부를 설득하여 마침내 쇼군으로 하여금 정권을 천황에게 돌려주도록 함으로써 일본의 60여 번이 막부지지파와 근왕파로 갈려 최후까지 사투를 벌이게 될 유혈 사태를 막는다.
료마의 위대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당시 무사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번의 이익과 안위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료마는 통일된 하나의 일본을 생각하고 진정한 일본인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일본에 와 있던 영국인과 네델란드인 그리고 외국 서적들을 통해 서구의 민주주의와 상하양원제 등 법적 제도 등을 접하고 왕정복고 이후 이를 일본에 도입함으로써 일본이 근대국가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하며 그 초석을 마련했다.
이러한 자신의 위업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영혼인 료마는 권력에는 일체 욕심이 없었다. 그는 정치가 안정되면 자신은 해상무역을 통해 일본을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는 또 다른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867년 11월 료마는 메이지 유신을 코앞에 두고 자객의 칼에 맞아 서른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일본 근대화에 온몸을 던진 사카모도 료마.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일본의 100년을 바꿔놓은 영웅의 삶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남긴 말
“인생은 흔히 일종의 연극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생이 연극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연극의 무대는 타인이 설치해 주는 반면 인생의 무대는 자신이 직접 설치해야만 한다. 그것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무대를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결코, 타인이 무대를 만들어 주는 법은 없다.”
“인생은 짧다. 남자는 일단 뜻을 세웠으면 그 뜻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만을 생각하고 나아가야 하며 어떠한 난관이 닥쳐도 좌절을 해서는 안 된다. 설사 그 목적이 성취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목적으로 가는 도중에서 죽어야만 한다. 생(生)과 사(死)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는 것이니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대사(大事)를 성공 시키려면 하늘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늘이란 시국(時國)을 말하며 시운(時運)이라고도 한다. 시국을 정확히 파악하고 시운을 타고 일을 진행시킬 때 대사(大事)는 단숨에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 하늘을 통찰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대사를 이루려고 하는 자가 우선적으로 구비해야 할 요소이다.”
“사나이답게 죽는 것도 좋다. 하지만 사나이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목적과 이상을 가지고 그 이상(理想)에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사나이가 가야 할 길이자 취해야 할 행동이다.”
“남자는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결코 '큰일 났다'라는 말을 하지 말라. 매사에 있어 용의주도하게 생각한 후 행동에 옮겨야 하고 그래도 궁지에 몰렸을 경우 '큰일 났다'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큰일 났다'고 말하는 순간 인간은 이미 지혜도 사고도 분별도 무디어지기 때문이다.”
“역사를 이루어 가는 주체들이 위대한 점은 과연 무엇일까? 평범한 자들로서는 결코 행할 수 없는 자기희생과 진정한 용기 그리고 과감한 결단력이 바로 그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점일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자들을 일컬어 영웅(英雄)이라 한다. 역사란 그러한 영웅들에 의해 변혁되어 지면서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일본을 다시 태어나게 하고 싶을 뿐 다시 태어난 일본에서 영달을 취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런 심경이 아니고서는 대사업이라는 것을 할 수 없다. 내가 평소 그런 심경으로 있었기 때문에 일개 낭사에 지나지 않는 내 의견을 세상 사람들이 경청해 준 것이다. 또한 이렇게 큰일을 성취한 것도 그 덕분이다. 일이란 것은 전부 해 버리면 안 된다. 8할까지면 족하다. 그러나 8할까지가 어려운 것이다. 나머지 2할은 누구라도 다 할 수가 있다. 그 2할은 남에게 할 수 있도록 하여 완성의 공을 양도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사업을 이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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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이는 분노가 더 무섭다는 것을 적들은 알지 못했다. |
칭기즈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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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고향에서 쫓겨났다. 어려서는 이복형제와 싸우면서 자랐고, 커서는 사촌과 육촌의 배신 속에서 두려워했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내가 살던 땅에서는 시든 나무마다 비린내, 마른 나무마다 누린내만 났다. 천신만고 끝에 부족장이 된 뒤에도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적진을 누비면서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나는 먹을 것을 훔치고 빼앗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유일한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꼬리 말고는 채찍도 없는 데서 자랐다. 내가 세계를 정복하는 데 동원한 몽골인은 병사로는 고작 10만, 백성으로는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타고 달리기에 세상이 너무 좁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결코 내가 큰 것은 아니었다. 배운 게 없다고, 힘이 약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글이라고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고, 지혜로는 안다 자모카를 당할 수 없었으며, 힘으로는 내 동생 카사르한테도 졌다. 그 대신 나는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고,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 나는 힘이 없기 때문에 평생 친구와 동지들을 많이 사귀었다. 그들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나를 위해 비가 오는 들판에서 밤새도록 비를 막아주고, 나를 위해 끼니를 굶었다. 나도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누볐고, 그들을 위해 의리를 지켰다. 나는 내 동지와 처자식들이 부드러운 비단옷을 입고, 빛나는 보석으로 치장하고, 진귀한 음식을 실컷 먹는 것을 꿈꾸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린 끝에 그 꿈을 이루었다. 아니, 그 꿈을 향해 달렸을 뿐이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땡볕이 내리쬐는 더운 여름날 양털 속에 하루 종일 숨어 땀을 비 오듯이 흘렸다.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고, 가슴에 화살을 맞고 꼬리가 빠져라 도망친 적도 있었다. 적에게 포위되어 빗발치는 화살을 칼로 쳐내며, 어떤 것은 미처 막지 못해 내 부하들이 대신 몸으로 맞으면서 탈출한 적도 있었다. 나는 전쟁을 할 때면 언제나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극도의 절망감과 죽음의 공포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아는가? 나는 사랑하는 아내가 납치됐을 때도, 아내가 남의 자식을 낳았을 때도 눈을 감지 않았다. 숨죽이는 분노가 더 무섭다는 것을 적들은 알지 못했다. 나는 전쟁에 져서 내 자식과 부하들이 뿔뿔이 흩어져 돌아오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더 큰 복수를 결심했다. 군사 1백 명으로 적군 1만 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는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죽기도 전에 먼저 죽는 사람을 경멸했다. 숨을 쉴 수 있는 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나는 흘러가 버린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개척해 나갔다. 알고 보니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