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퍼옴 복사

구원받는다는 믿음 좀 구체적으로...

곰발바닥개발바닥 2013. 11. 30. 18:07


  강불이웅 (2013.11.26 03:43, Hit : 21, Vote : 2
 ◈구원받는다는 믿음 좀 구체적으로...

2013.11.26 03:43 입력 / 2013.11.26 03:43 수정         

글꼴크기 :

◎어느 네티즌의 질문.
안녕하세요. 전 23살이고 정말 몇년 전부터 이걸 풀지 못해서 교회를 못다녔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주신다고 했는 데... 어떤 사람은 예수님만 믿어서는 안되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져서 죄를 사한 것까지 같이 믿어야 구원을 주신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만 영접하면 십자가 지신건 몰라도 이미 구원은 왔다고 하고요... 이게 별 문제가 아닌거 같지만 정말 나 한테는 오래전부터 고민한 거였습니다. 성경 구절까지 찾아주셔서 답변해 주시면 정말 감사드립니다.

◈답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기 싫어도 이미 구원 받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었는데도 구원에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혼잡(의심)에 빠져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혼잡(의심)은 대체적으로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은 지키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죄벌입니다.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린도후서 2:17) 하심 같이, 엄밀히 말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곧 그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단순한 일입니다.

일례를 들어, 어느 시골에 사는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 볼일을 다 보고 난 후 고향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나가는 행인을 붙들고, "서울역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행인이 "다음 사거리에서 오른 쪽 방향으로 꺾어 5백 미터쯤 가면 역광장이 보입니다."라는 답변을 해 주었습니다. 이 때 시골 분이 그 행인의 말을 믿고 곧장 그 말대로 따라 행하여 가면 반드시 서울역이라는 곳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이 누구를 믿는다고 하였을 때에는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고, 또 말을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르쳐 주는 말대로 따라 행동해 움직이는 것이 비로소 그 사람의 말을 믿은 것이 됩니다. 만일 시골 분이 앞서 가르쳐 준 행인의 말을 듣고도 자신이 처음 서울을 찾아 왔을 때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서울역은 그 쪽이 아닌데?" 하면서 그 행인이 가르쳐 준 말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그것은 그 행인의 말을 믿지 않은 것이 되며, 또 그 행인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은 곧 그를 불신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는 것이며, 또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신학자와 목사님들이 이런 간단한 믿음의 도를 몸소 실행해 보이는 것으로 사람들을 가르치지 않고, 별의별 신학적 해석과 논리를 만들어 믿는 자들을 혼잡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즉 그들 대부분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고 책상머리에 앉아 천태만상으로 연구하고 풀이하고 해석만 하기 때문에 수많은 교인들도 그들의 그러한 행습을 본받아 따라 행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았는지 못받았는지 의심(방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주 간단한 문제를 그토록 어려운 문제로 취급해 방황(혼잡)하게 만드는 까닭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는 것이며, 또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라는 평범한 상식을 적용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런 평범한 상식을 적용해 살아가지 않는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일이 육신적으로는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십자가의 길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실체이신 말씀을 받아들여 실행하거나 실행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주는 자가 복이 있다”라는 성경 말씀을 단순히 기억하기만 하고 결코 지키고 실행할 수 없는 말로 취급하는 것은, 마치 시골 분이 "이곳 서울에 사는 사람들만은 서울역을 반드시 알고 있다."는 것을 지식적으로 알기만 할 뿐, 실지 그들이 가르치는 말대로 믿고 따라가고자 하는 생각과 마음은 추호도 하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만일 시골 분이 지나가는 행인을 붙들고, “서울역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오른쪽 길로 가면 됩니다”라는 말을 듣고 오른쪽으로 가면 그 시골 분은 그 행인의 말을 믿는 것이 되어도, “오른쪽 길이 아닌데?" 의심하면서 다른 쪽 길로 가게 되면, 그 행인의 말보다 자신의 육감적(肉感的)인 지식을 더욱 의지해 믿고 그 외 다른 어느 사람의 말도 믿지 않은 불신자와도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누구를 믿는다 할 때의 믿음의 대상은 그 사람의 말이며, 그 사람의 말을 듣고 행동에 옮기려 하거나 행동하였을 때에만 그 사람의 말을 믿은 것이 될 뿐, 실지 행동에 옮길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다만 참고적으로 듣고 아는 것으로만 끝내는 자는 모두 불신 범죄자입니다. 이런 불신 범죄자들은 어느 누구로부터 태어나 누구에게 소속되어 살든지 간에 그 주인의 말씀을 믿음으로 따라 실행하려 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주인의 말을 판단해 해석하기만 합니다. 즉 에덴동산의 사단처럼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였다는 것을 지식적으로 알기만 할 뿐, 결코 그 말씀을 믿고 따라 행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17) 하심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들음은 단순히 전도자의 말을 귀로 듣거나 복음서를 눈으로 보아 아는 것만 뜻한 것이 아닙니다. 즉 들음은 단순히 귀로 받아 들이는 청각적인 소리에만 국한하여 들음이 아니라, 귀로 들은 말을 실천하였을 때가 참된 들음이 됩니다.

아버지가 한 아들에게 “얘야! 음료수 한 병 사오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순종하지 않게 되자 다른 아들에게 똑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아들이 순종하여 음료수를 사 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두 아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순종한 아들에게는 “넌 내 말을 잘 들었으니 이걸 가져!" 하면서 용돈을 주었고, 불순종한 아들에게는 “넌 왜 내 말 안 들었어, 종아리 걷어!” 하며 매질 하였습니다.

보십시오. 두 아들이 똑 같이 아버지의 말씀을 청각적으로 받아 들여 인식하였습니다만은, 말씀대로 순종한 아들에겐 “넌 내 말 잘 들었다” 하며 상금을 주고, 불순종한 아들에겐 “넌 왜 내 말 안 들었니?” 하며 매질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들음'이란 말은 결코 예배당에 앉아 성경말씀을 보고 설교를 듣는 것만이 '들음'이 아니며, 오직 듣고 본 말씀대로 실행하는 것이 참된 '들음'이 됩니다.

http://cafe.daum.net/kblw 기독 애국 신우회




  

북괘 박멸 (2013-11-26 06:52:22)  
우리인간은 선악과 따먹은 똑똑한 인간과 그나마 못먹은 괴물인간이 공존하고 있다 강옹 당신은 선악과 따먹은 아담과 이브의 자손이 아닌것같다